곰같은 여우의 이야기
학습된 무기력의 상징 비커 속 벼룩, 쇠사슬에 묶인 코끼리는 정말 잘못했을까? 본문
비커속 벼룩 실험이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, 원래 벼룩은 엄청 높게 뛸 수 있지만, 투명한 비커 속에 가둬두면, 몇 번 시도하다가,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더 이상 시도하지 않게 된다는 실험을 말하죠.
그리고 실제 사실과 다르지만, 잘 알려진 코끼리의 쇠사슬 이야기도 있습니다, 어린 코끼리를 쇠사슬에 채워두면, 그 경험 때문에 커서도 쇠사슬을 스스로 끊지 않는다는 얘기 말이죠.
(실제로 코끼리는 똑똑하고, 힘도 쌔서 가볍게 끊는다고 합니다)
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합니다, 계속 실패가 반복되면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걸 하려고 하지 않고, 피하게 된다는 것, 그리고 꼭 이 예시 뒤엔 이런 말도 옵니다.
그래서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.
그런데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은 경험을 통해, 학습이라는 것을 합니다, "아 이건 하면 안되는거구나~"라는 경험적 지식 말이죠.
1. 정말 학습된 무기력은 잘못된 걸까?
물론 도전도 좋지만 우리가 계속 그 '투명한 비커'같은 억까에 부딪친다면 그 충격으로 오히려 포기하지 않았을 때, 더 심하게 다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?
제가 재능이 없어서,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다는 걸,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, 양 손목에 손목 터널 증후군이 다 생기게 된 것처럼 말이죠.
2. 어쩌면 당연한 '학습된 무기력'
우리는 누군가 쉽게 포기하려고 하거나, 쉽게 포기하려고하는 것처럼 보일 때, 그 사람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함부로 판단하고, 비난하거나 비판하곤 합니다,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자기 자신도 그렇게 대한다는 것이죠.
'포기'하게 되는 억까와 같은 이유와 경험들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, 마치 원래 '실패자', '나쁜 사람'이라는 낙인을 찍고, '사소한 실패'들을 타인이나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하죠.
오히려 계속하는 게 부자연스럽다.
그러나, 실패에도 오히려 계속 도전하는 게 어쩌면, 매우 부자연스럽습니다, 비행기를 처음 만들었다는 라이트형제 말고도,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'비행기'를 상상하고 만들어보려고 하다가 '실패'했겠어요?
조금 더 자신과 타인의 '실패', '포기'에 대해서 받아들일 수 있고, 용인할 수 있어야 그 다음 도전도 조금 더 위축되지 않고, 여러 방면으로 도전해볼 수 있게 하면서, 잘 해낼 수 있게 하는 것 같습니다.
3. 학습된 무기력을 벗어나는 길
오히려, 자신이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, 유일한 방법이자 길인 것 같습니다,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멈추고,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 말이죠.
타인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, 응원해줘도 힘이 생기는데, 하물며 자기 자신이 실패를 용인해주고,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엄청나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?
오늘은 실패해도 내일은 성공할 수 있다.
나와 타인의 도전, 그런 과정들을 조금 더 존중하고 억까에 '실패'하더라도 함부로 비난하고, 깎아내리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더 유익한 것 같습니다.
왜냐하면 우린 서로를 응원하고, 지지해 주고 충분히 '실패'를 용인해 주며, 다시 일어서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, 삶은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없는 '과정'의 연속이니까 말이죠.
아무리 생각해봐도, 벼룩과 코끼리가 억까 때문에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잘못이 아닌 것 같습니다, 오히려 학습 능력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.
중요한 건,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에 도전해 볼 것인가? 앞으로 어떤 '작은 성취'를 이뤄내볼 것인가?인 것 같습니다.
결국 우리는 해낼 것이기 때문이죠.
그리고 만약, 삶이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, 도전해 볼 수 있는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.
왜냐하면 나 자신을 도전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니까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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